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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작사부작 호주에서 사는 이야기

[호주댁 사는 이야기] 왜 나는 너에게 상처를 주는가

by 날것의 양파 2020. 8. 11.

그 유명한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라는 카피라이트에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상처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 이 이야기는 야식 떡볶이를 먹다가 시작되었다. 요즘 한창 '일반인 돈벌이' 중 가장 매력적인 메커니즘인 유튜브의 양면성을 이야기하면서 "유튜버"는 (재능이 있고 꾸준히 한다는 전제하에)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악플& 무개념플에 '상처'를 받게되는 숙명에 놓여있다며 양날의 검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 발단은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거였다. 

 

나는 그 숙명에 약간의 딴지가 걸고 싶었다. 내가 만약에 유튜버/인플루언서의 삶을 산다고 해도 불특정 다수에게 크게 상처받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에 "결코 상처를 줄 수 있는건 내자신 뿐 아니냐, 누구도 감히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지" 라고 내뱉은 말이었는데, 우리집 막내 파스타캉은 말했다.

 

"저는 저 문구가 이해가 안가요. 상처주는 말을 마구 퍼부은 사람은 따로있는데 왜 결국 상처를 주는 주체가 내가 되는건지."

 

Unsplash, Photo by Trym Nilsen

    

그러고 보니 상처가 뭘까? 영어로는 What is your definition of getting hurt? 정도가 될 것 같다. 나는 악플러들이 남긴 말도안되는 글이 나에게 경향을 주게 내버려 두지 않을거라고, 순간 욱하는 마음처럼 화가 나는 건 인간으로서 드는 당연한 감정이긴 하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거라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건 결국 나 자신이라고 말했고, 예를들어 내게 그동안의 상처를 통틀어 꼽아보라 한다면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 정도로 인생의 crisis 라 할 수 있는 것 외에, 그 어떠한 것도 내게는 상처로 남아있지 않다고 이야기했더니 이상몽상씨는 말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 아문 상처와 아직 or 평생 아물지 못할 상처 두가지로 그 성격이 나뉠 뿐 지나간 상처도 다 상처인데, 어쨌든 그 순간 화가나는 감정을 느꼈다면 그건 상처인거야."

 

너와 나의 상처에 대한 정의가 다를 때, 같은 현상을 놓고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현상이 생겨난다. 정리된 생각을 적어보자면, 나는 가까운 사람일 수록 '상처 비슷한 감정' 을 받는 경향이 있다.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면 끊어내 버리고 신경을 두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 수록 예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서 불특정 다수의 말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고로, 언젠가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었을 때, 상처받지 않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나는 말했던 것 같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고,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면, 건설적인 피드백(constructive feedback)은 받을지언정, 비난(criticism)은 선별해서 나에게 투과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이야기다. 

 

사실 우리는 타인이 주는 상처가 내가 주는 상처가 될 수있는지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그 타인이 어떤 타인에 속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상한결론ㅋㅋㅋ). 가까운 관계일수록 큰 상처가 되어 다가오기 때문에, 이상몽상씨가 나에게 내뱉은 상처가 될만한 말들을 앞으로는 조심해달라는 그런 결론......... 을 내려다가 결국 너도나도 자존심 내세운 가시돋힌 말이 만무하는, 토론 아닌 조금은 지저분한 논쟁으로 번지고 말았다.

 

왜 나는 너에게 상처를 주는가. 내가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작동하는 방어기제가, 네가 내뱉은 약간의 상처유발의 말과 만나 나도 너에게 상처를 주는 그런 무한루프...에서 자존심을 세우기 때문 아닐까. 어쨌든, 아직 너와 나는 이렇게 약간은 삐그덕거리면서 맞춰가는 조율의 단계에 있으니, 그런 단계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나에게 상처를 주지 못하게 할거라는 그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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