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우 일찍 인생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나는 인생이 나를 위해 특별한 것을 해주기를 결코 기대하지 않았으나, 나는 내가 희망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한 것 같았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일은 내가 찾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났다."
(I decided, very early on, just to accept life unconditionally; I never expected it to do anything special for me, yet I seemed to accomplish far more than I had ever hoped. Most of the time it just happened to me without my ever seeking it.)
- 오드리 헵번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나는 특별한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 엉망이다.
대부분에 경우 내가 별생각 없이 가만히 있으면 상황은 저절로 더 X 같게 변해가곤 했다."
- 출국 하루 전 이상 몽상
출발 당일
일주일 전 부랴부랴 구입한 2번 경유하여 브리즈번에 도착하는 60만 원 편도 티켓은 5년 전 받았던 군대 영장만큼이나 싸늘해 보였고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그걸 받을 때도 불안감에 눌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나 하나 어떻게 못 살겠어. 다들 갔다 오더구먼!'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까지. 최소한 입대 전에는 군대의 사건사고 같은 건 읽고 입대하진 않았는데.
군대에는 헌병대라도 있지. 호주 경찰이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도움은 요청할 수 있을까.
주문처럼 돈 히트 미 아이 엠 휴먼을 되뇌고 생존에 필요한 영어 목록을 검색하며 당장 브리즈번에 도착하자마자 어떻게 해야 할지
검색하고 외우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여러 가지 자료와 함께 앞으로의 희망찬 워홀 생활을 그려도 잘 살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패닉에 빠져 짧은 시간 안에 여러가지 자료는커녕 블로그 맨 처음에 있는 3년 전 글과 서점 한 구석에 있는 호주 워홀 살아남기
같은 장황하고 핵심이 어디 있는지 모를 몇 마디 책의 글 귀 몇 자를 머리에 욱여넣고 나니 어느새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해외 출국이 처음이었던 나는 경유라는 것의 위험성을 전혀 알지도 못했고 1시간의 텀이 있던 비행기 경유 시간에도
'한 시간이면 공항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으려나?' 라던가 'Transfer는 경유, Transfer 표지판을 따라가자' 하는 속 편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공항에 마중 나오신 부모님께는 차마
'당신 아들이 지금 사기당한 뻔하다가 다행스럽게도 그건 면하게 되었어요. 근데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것도 아니고 지금 당신 아들 패닉 상태예요 패닉. 그냥 아무 고토 모르고 호주 브리즈번 공항에 덜렁 떨어질 예정이니 당신 아들이 호주에서 별 다른 사고 없이 돌아오길 기적이나 하늘에 빌어보는 게 어떠합니까?'
라고 말할 수는 없기에 그저 '걱정 말라고 사람 사는 곳이고 이미 일하기로 정해진 곳이 있고 한국인 매니저도 있다'
라는 거짓말로 안심시킬 수밖에 없었다.
기대감과 흥분이 있어야 할 첫 해외로의 발걸음은 도살장에 간다는 걸 충분히 교육시킨 소가 끌려가듯 무겁기만 했다.
3월 13일 새벽 6:00 브리즈번 국제공항
무사히 도착했다. 살았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다.
비행기를 놓쳐 이상한 공항에서 맥도널드 짝퉁 브랜드에서 언제 구웠는지도 모를 말라비틀어진 패티가 담긴 빵조가리를 먹지 않아도
되었다는 안심과 함께 알 수 없는 향신료 향이 강한 기내식에 헛구역질을 하다 보니 제대로 먹지 못하고 힘이 쭉 빠진 상태였다.
배가 고프고 힘이 빠진 게 뭐 중요할까. 지금 당장 임시 거점을 마련하고 은행계좌와 핸드폰을 영어로(!) 개통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데.
은행계좌는 한국에서 NAB라는 은행의 계좌를 미리 만들고 현지에서 개통만 하면 되는 시스템을 이용하여 바로 해결했고.
핸드폰은 당시 호주에서 워홀러들에게 가장 괜찮다는 평을 듣던 옵터스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공항 안내데스크에서 퀸즐랜드 교통카드인 고 카드를 구입하고 간단한 안내지도를 챙긴 나는 데이터 없는 폰을 들고
시티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일단 시티 중심에 있는 은행에서 계좌를 개통하기로 한 나는 지도를 보면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로마 파크 스테이션이 시티의 중심과
굉장히 가까워 보였다. 당시에는 센트럴이라는 역 이름이 뭘 뜻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도와 그 지도의 축척을 내 눈으로 대략 가늠하여
여기서 내리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내리자마자 무거운 케리어를 이끌고 먼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시티 중심에선 센트럴 역이 가깝다. 로마 스테이션의 역은 꽤나 멀다. 종각에서 시청까지 한 정거장이지만 꽤나 먼 것처럼)
그렇게 시티에 도착하여 폰을 개통하였지만 그 당시 호주의 상황으로 개통 뒤 4시간 후에 전화와 문자를 사용할 수 있으며
(설명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론 2시간이 걸렸다) 데이터는 다음 날이 돼서야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이건 진짜였다)
이것이 호주의 느긋함을 체험함과 동시에 한국 뽕이 차올라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은행계좌를 오픈하는 것도 앉아 있는 직원이 이러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하는 나에게
여권을 빼앗아가듯 가져가서는 뚝딱뚝딱하고 나니 내 계좌가 오픈되었으며 카드는 일주일 뒤에 배달될 거란 말을 남겼다
(이건 2020년 현재에도 같다. 지점에서 카드를 안 준다.)
현금으로 3천 불을 가지고 있던 나는 전부 입금하고 싶었지만 가진 돈을 전부 입금한다면 카드가 도착할 때까지 너는 무일푼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선현들의 뼈에 사무친 조언 글에 600불을 남기고 입금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직원은 나에게 손으로 작성할 수 있는 전표를 주었고 그곳에 입력하니 수기로 작성된 영수증을 주며 입금이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인쇄가 된 영수증만 받아 본 나에게는 이 곳의 시스템과 환경 느림이 미심쩍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그 영수증이 마치 2500불 인양 소중하게 지갑에 넣고 나올 수밖에.
백패커에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백패커의 위치는 무려 내가 내린 로마 스테이션 근처......
또 걸었다 또 걸었어. 호주 생활의 첫날부터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라는 격언을 뼈에 새기며 도착한 백패커.
백패커 직원은 나에게 책책책 책을 외치며 무언가 물어봤고 나는 멍하니 10분을 뭔 소린지도 모를 이야기를 들으며
방을 달라 애원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예약했냐는 뜻이었다.(Did you have booking?, Did you book?) 당시에 아는 게 뭐 있겠냐 싶지만.)
그러한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침대에 곯아떨어지듯 자고 일어나 그제야 배고픔을 느낀다는
이젠 호주에서 고향과도 같은 로마 스테이션에 있었던 맥도널드에 가, 역시 안 되는 영어로 $1불 햄버거를 사이드 메뉴 없이 사 먹었다.
그게 내 호주에서의 첫 끼니이자 아직도 가난한 워홀러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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